북평동(北坪洞)
도시, 농촌, 어촌의 성격을 공유한 복합도시
지역특징
- 도시, 농촌, 어촌의 성격을 공유한 복합도시 (산업구조 : 1차산업 48%, 2차산업 29%, 3차산업 23%)
- 북평산업단지(783천평) 소재지이며 인근에 국제 무역항인 동해항이 위치
- 관광 유원지로서 지역 문화재 다수 소재
- 일출의 명소 추암 해금강(촛대바위 : 우리시 최동단) 및 해수욕장
- 만경대(萬景臺), 호해정(湖海亭), 해암정(海巖亭)(지방문화재 제63호), 靑蓮寺 鐵佛 등
- 북평민속 5일장(매 3, 8일) 개장지이며 국도 38호선, 42호선의 시발점
연혁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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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4.1
- 동해시 북평동 설치 [4개 법정동(북평, 구미, 구호, 추암), 8개통]
동해시 이원동 설치 [7개 법정동(대구, 단봉, 내리, 호현, 이도, 지가, 귀운), 13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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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7.1
- 북평·이원동 행정구역 일부 변경[대구동(9, 10통), 내동(11통), 호현동(12통)이
이원동에서 북평동으로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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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1.28
- 북평동 1개통 10개반 신설(13통, 주공연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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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8.28
- 북평동 1개통 5개반 신설(14통, 주공2차 아파트)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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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12
- 북평동 1개통 5개반 신설(15통, 현진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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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15
- 이원동 1개통 9개반 신설(10통, 현대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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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9.26
- 이원동 1개통 7개반 신설(11통, 강변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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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1.2
- 행정동 통·폐합(북평동+이원동⇒북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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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0.2
- 북평동 문화의 집 개관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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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8.5
- 북평동 4개통 28개반 신설(27∼30통, 이도주공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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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28
- 반 신설(북평동 3통4반이 3통4반, 6반으로 분반) 총 30통, 165개반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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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3
- 반 신설(북평동 6통 7반 신설)
동유래
구미(九美)
조선조 순조때 홍건기가 붙인 이름이라고 전하는 데, 현재의 전천이 옛날 단봉리에서 구미리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갔는데 물 구비진 곳에 마을이 있다하여 구비(曲)가 변하여 九美가 된 것이라는 설과, 구미마을이 예전에 거붑마실이라고 불리어 왔던것에 비추어 龜山(구산) 혹은 龜尾(구미)로 적어오던 것을 龜尾 대신에 음이 같은 九美로 고쳐적은 것이라는 설이 있다.
구호(九湖)
유래는 분명치 않으나 흔히 마을 동쪽 해안에 굴바우(窟岩)가 있어 窟岩(굴암) 또는 굴아라고 불리어 왔는 데 후에 龜湖가 되고 1914년에는 九湖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추암(湫岩)
추암이라는 지명은 용추(龍湫)에 기이한 바위가 있으므로 湫岩이라 한 것이다. 용추는 능파대(조선 세조때 한명회가 명명)의 옛이름인데 바위들이 신선과 같은 경관을 자아내는 곳이다. 지금은 분단의 아픔을 느낄수 있는 해안 경계용 철조망이 둘러 처져서 민간은 접근이 어려운 곳이다. 이곳 추암은 특히 촛대바위와 동해일출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재인 해암정이 있는 곳으로 꼭 한번 방문해 볼 만한 곳이다.
북평(北坪)
조선 인조9년(1631)에 삼척부사 이준(李埈)이 전천을 경계로 북쪽은 북평리(北坪里), 남쪽은 박곡리(璞谷里)로 정한 데서 비롯한다. 북평이라 한 것은 삼척부에서 북쪽에 있는 「들」이라 하여 「뒷드루」로 부르는 것을 한자로 옮긴 것으로 전한다.
대구(大口)
예전에 전평(前坪) 또는 도계방(道溪坊)이라 했던 곳으로 마을이 큰 언덕위에 있다 하여 대고전(大皐田) 또는 고전(高田)이라고도 했다. 한자 지명 대고전(大皐田)은 속지명 대구밭을 옮겨 적은 젓으로 추정되며 大口田 혹은 大龜田으로 표기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大口里로 정착되었다.
호현(虎峴)
호현이라는 이름은 마을 북쪽에 범아고개가 있어 이것의 한자 지명인 호현(虎峴) 또는 호현산(虎峴山)에서 유래한 것으로, 예전에는 견박(見朴)이라는 명칭으로 호현동을 지칭하기도 하였다.
내리(內里)
예전에 內谷이라 했는데, 이것은 산 안쪽에 있는 골짜기라는 데에서 붙인 지명이다. 마을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동쪽의 마을 입구만 터져 있어 배의 형국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천석꾼이 될 수는 있으나, 배가 차면 가라앉듯이 만석꾼은 되기 어렵다는 풍수설이 있다.
이도(梨島)
1916년 梨洞과 島內를 합하여 성립된 동리이다. 梨洞은 삼척군 견박면의 지역으로 속지명 「배꼴」에 해당되며, 舟谷(주곡) 또는 梨谷(이곡)으로 표기되다가 1909년에는 한때 利洞으로 적기도 하였다. 한편 島內는 삼척군 도상면에 속했으며 속지명 「섬안」에 해당된다. 전천의 수로가 마을을 남북으로 나눠 수로 북쪽은 섬안, 남쪽은 배꼴이라 하였다.
귀운(歸雲)
귀운은 예전에 龜雲(구운)이라 적었는데 그 유래는 확실치 않다. 일설에는 이 곳에 구름이 끼면 남쪽에 있는 삼척시 미로면으로 돌아간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 하나 이는 글자 그대로 풀이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귀운골은 속지명 「구룬골」또는 「구룽골」임을 감안해 볼 때 물이 굴러 흐르는 계곡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일수 있다.
지가(池柯)
지가동은 1914년 지상(池上)과 가원(柯原)을 합하여 지가라 하였다. 지상은 지상제언(池上堤堰)의 위쪽에 있어 지상이라 했는데 이 곳에 池香寺가 있었던 데에서 지향(池香)이라고도 했다. 한편 가원은 나무가 많은 것과 관련하여 그 유래를 말하나 취할 바가 못된다. 오히려 허목의 『척주지』에도 나타나듯이 조선조 중엽 이전에 축조되었던 것으로 판단되는 못(池)과 관련하여 지명 유래를 살펴봄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단봉(丹鳳)
단봉은 1914년 봉정, 옹기점, 단실을 합하여 단봉이라 하였는데 단실의 한자지명 단곡(丹谷)과 봉정(鳳亭)의 앞자를 따서 붙인 지명이다. 봉정은 옹기정(甕器亭), 봉구정(鳳邱亭), 봉미정(鳳尾亭) 등으로 불리웠는 데, 이들은 모두 마을의 형세가 봉황새처럼 생겼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